#신앙 #삶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애굽기 33:18)
by. A. W. 토저ㅣA. W. 토저의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 ①
진실한 신앙의 본질은 ‘창조하는 인격’이신 하나님께 ‘창조된 인격’이 반응하는 것이다. 인격적이신 하나님은 깊고 능하신 신성 안에서 생각하시고, 뜻하시고, 즐기시고, 느끼시고, 사랑하시고, 원하시고, 고통받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경로를 통해 소통하신다. 하나님과 구원받은 영혼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사랑, 인격적인 교제야말로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모든 것 되신 하나님을 아는 기쁨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에 그분을 알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다만 우리의 죄가 그 능력을 빼앗고 있을 뿐이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살려 내시는 순간, 우리의 전 존재는 하나님과 가족 됨을 느끼고 인정하며 기뻐 뛰놀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하심을 좇는 행복한 탐구와 영광스러운 추구가 시작된다.
이 지점이 우리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종착점이 어디인지는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랍고 깊은 신비는 한계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이름)을 인격적으로 아신다는 사실을, 자신이 하나님을 더 알 수 있게 해 달라는 간구의 근거로 삼았다(출 33:12~13). 더 나아가 이렇게 요청한다.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하나님은 이런 열망을 기뻐하셨고, 다음 날 모세를 산으로 부르셔서 그분의 모든 영광이 모세 앞을 지나가게 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가 하나님 추구하는 일을 성경 교사들에게 맡기고 도외시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신자의 첫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관심을 기울일 뿐, 이후에 그 영혼이 하나님의 계시를 갈망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그분을 원하길 애타게 기다리신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기나긴 기다림을 허사로 만든다. 우리는 모세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과 구원받은 영혼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사랑,
인격적인 교제야말로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하나님, ‘그리고 다른 것 더’를 추구하는 습관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게 막는 방해물이다.
이를 치워 버리면 금세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다.
경이로우신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마음으로 그분을 만지고 또한 보기를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강력한 갈망, 이 거룩한 열망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경직된다. 이만하면 됐다는 안일한 태도는 영적 성장의 치명적인 적이다.
지금은 종교적 복잡성의 시대다. 온갖 프로그램과 조직이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차지하지만 근본적인 갈망은 결코 채우지 못한다. 수많은 종교적 외형 사이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려면, 먼저 그분을 찾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함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본질이 아닌 것을 버려야 한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포기하고, 거짓 없는 솔직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 외에는 달리 필요한 게 없다. ‘하나님, 그리고 다른 것 더’를 추구하는 악한 습관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게 막는 지독한 방해물이다. ‘그리고 다른 것 더’를 치워 버린다면 우리는 금세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 영혼이 오래도록 갈망한 것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만을 추구할 때 자신의 삶이 좁아질까 봐 염려할 것 없다. 하나님을 전부로 삼고,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해도 아무 지장 없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레위 자손을 향해 그분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네가 받은 몫, 네가 차지할 유산은 바로 나다.”(민 18:20, 새번역). 하나님을 최고의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갖지 못해도 자족하며 살 수 있다. 혹여 다른 무엇을 잃는다 해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온전히, 합법적으로, 영원히 누릴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