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삶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마태복음 6:5~6)
헬무트 틸리케의 하나님 마음을 듣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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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의무이자 선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마 6:5)라고 하셨다. 이는 “너희가 조금이라도 기도하게 되거든”이라는 의미다. 우리가 기도를 자주 하지 못하고 가끔씩만 하는 것은 세상이 우리의 집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계에 대한 염려, 성공에 대한 부담, 비좁은 거주 공간 등이 우리를 장악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기도의 세계가 낯선 이방 땅처럼 이질감이 든다. 반면 예수님은 기도의 모국에 계시다가 나오셔서 세상으로 들어가셨다. 그분의 본래 집에서 아버지와 교제하시며, 이 땅의 사람들에게 전하실 말씀을 먼저 아버지와 의논하셨다.
우리가 기도 시간을 손해로 여기고 축소하다가 몇 초밖에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루를 지탱하는 기초가 되지 못한다.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다른 일에 매달린다면, 하나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마 6:6) 기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 앞에 홀로 머무는 골방에서는 경건한 척 연기할 필요도 없고,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무언가에 방해받을 일도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된다. 마귀는 우리의 부산한 생각, 북적대는 환경을 통해 역사한다. 그러므로 골방은 혼탁한 시대의 전략적 요충지다. 하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놓치는 사람은 세상에 대처할 방도를 알 수 없다. 세상을 이기신 분과의 소통을 끊고 복의 물줄기를 막은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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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선택할 일이 아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명령이요 우리의 의무다(마 6:9; 눅 22:46). 기도가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폭풍을 막지 못할 아이의 울음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때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그분의 명령에 근거해 그러한 회의와 주저함을 뛰어넘을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간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셨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6:7). 왜 우리는 과도한 말로 상대를 압도하거나 상대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이들처럼 기도하는가? 우리의 사고 기능이 시작되기 전부터 하나님은 늘 우리를 생각하고 계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늘 아버지의 다함없는 자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외치신다. “파도가 너희를 위협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너희 곁에 계신다. 복과 도움과 구원은 준비되어 있다. 너희는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것을 주장하여 누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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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한숨과 더듬거리는 말까지 다 들으시는 아버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부성애를, 그 신성의 하향 인력(引力, 끌어당기는 힘)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눈과 귀는 마음이 상한 자, 고아와 과부, 병자와 빈민, 길 잃은 자녀에게로 늘 향한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굳이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우리가 아무리 깊은 데서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한숨, 신음, 투박하게 더듬거리는 말까지 모두 들으신다. 기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이름으로 부르시며, 탕자의 아버지처럼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신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 이제 이 사실을 믿고 그분을 찾기만 하면 된다. 우리를 부르고 계신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