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성이 된 시온 산성, 예루살렘

묵상을 돕는 배경 산책

예루살렘은 살렘 왕 멜기세덱의 도성으로 성경에 처음 등장한다(창 14:18). 여호수아 시대에는 아모리 족속, 사사 시대에는 여부스 족속의 성이었다(수 10:5; 삿 1:21). 또한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 도시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정복해 ‘다윗성’이라고 칭했다(삼하 5:7, 9).  

현재 다윗성 정문에는 다윗의 시편을 연상시키듯 하프가 장식되어 있다. 매표소 아래에는 다윗이 살던 궁전 터가 있다. 대개 성이 무너지면 그 위에 후대의 성을 짓는데, 이곳은 다 걷어 내고 기반암 위에 궁전을 새로 건축했기 때문에 예전의 다윗성 모습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다행히 모서리 부근의 걷어 내지 않은 곳에서 다윗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동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외성과 내성을 경사형으로 채우며 쌓은 밀로가 있다. 북쪽 부근에서는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새겨진 인장들이 발견되었다. 중앙에서는 ‘아히엘의 집’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방 네 개가 딸린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집이다. 당시 왕의 궁전이 정상에 위치했기에 왕은 신하들이 사는 집들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지붕이 없는 마당에서 목욕을 했다면, 다윗이 위에서 충분히 내려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집의 북쪽 옆으로는 좌식 화장실 돌이 발견되었다. 호기심 많은 어떤 고고학자가 화장실 아래 토양을 조사했다가, 성이 멸망하기 직전 불결한 환경에서 조악한 음식을 먹어 소화가 안 된 듯한 사람들의 설사 배설물을 발굴했다. ​

 성의 동쪽에 기드론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에 기혼샘이 흐른다. 기혼샘은 예루살렘의 유일한 샘이다. 그래서 전쟁 때 성이 에워싸이면 성 밖에 위치한 샘에서 물을 공급받기 위해 가나안 시대부터 지하로 접근하는 ‘워런 수구’ 동굴을 파거나 샘을 지키기 위한 망대를 만들기도 했다.​

 

다윗은 수구나 샘 망대의 물 긷는 곳을 통해 시온 산성을 정복했고, 히스기야왕은 기혼샘을 성안으로 끌어들여 실로암 연못을 만들었다. 다윗은 언약궤를 옮겨 와서 예루살렘성을 정치적·종교적 수도로 삼았고, 북쪽 모리아산까지 성을 확장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예루살렘을 영원한 도성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여호와 이레’의 성으로 준비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