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삶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마태복음 5:13)
헬무트 틸리케의 하나님 마음을 듣다 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이 너희의 영향권 안에 있다. 너희를 소금으로 부르신 하나님이 너희를 통해 세상이 맛을 내게 하실 것이다.”라는 약속이다.

죄인의 마음을 쏘아 통회하게 하고,
지금은 소금 통에서 나와야 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좇으면서 고통 없는 치유와 행복을 원한다. 그래서 금송아지와 ‘꿀 신(神)’을 달라고 아우성친다. 이름뿐인 유약한 그리스도인의 야망은 세상의 꿀단지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쓰라린 인생에 달콤한 설탕을 뿌린다. ‘모든 것을 용납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솔깃한 개념으로 죄를 유화시킨다. 천국만 남기고 지옥을 없애 버리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죄인들의 가슴 찢는 회개와 순교자들의 신음 가운데 임한다. 소금의 맛은 아리게 톡 쏜다.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는 죄인의 마음을 찔러 쓰라리게 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세상의 저항이 없다면, 진정한 소금이 결여된 것이다. 설교자가 뿌리는 소금에 쏘여 보지 못한 청중은 자신이 아무 문제 없이 건전한 줄 안다.
소금을 조금만 뿌려도 음식 전체 맛이 달라진다.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험담이나 음담패설을 듣고 웃지 않을 때, 좌중의 분위기는 그 소금 덕분에 제대로 된 맛을 되찾는다. 적대감에 휩싸인 공동체에서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면 갑자기 그곳에 치유의 요인이 개입된다. 힘든 상황에서도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기꺼이 신앙을 공표하면 그 그룹 전체에 일순간 바닷바람처럼 짠맛이 돌 수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닫았던 마음을 열 수 있다.

소금은 부패를 막는 힘이 있다. 이러한 소금이 없어서 세상이 썩어 간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끔찍한 나락에 떨어질 운명에 놓여 있건만, 온갖 즐거움에 취해 있다. 자기 안에서 기생충과 종양이 커져 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참제자들이 세상 속에 들어가 면역력을 길러 주어야 한다. 변질과 부패의 독에 맞서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장차 닥칠지 모를 재해를 염려하며 두려워하거나 절망적인 현실 때문에 체념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합리와 불합리를 초월하는 주님의 평강을 뿜어낼 수 있다. 우리가 평강의 왕이신 주님을 전하면, 그 진리는 부패한 염려와 무력한 두려움 속에 작용한다.

편한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희생하신 주님처럼,
소금의 책임을 다하려면, 소금 통에서 나와야 한다. 소금 통 안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타락과 멸망의 길로 가게 내버려두면서, ‘어차피 구원을 잃은 세상’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들은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물들어 맛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짠맛을 잃는 쪽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이가 아니라, 소금 통에 남아 있는 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소금 통 안에서 내면을 다지며 더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할 수 있다.”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세상에서 당신이 할 말은 성령께서 일러 주실 것이다(마 10:19~20). 영적 성장은 사명을 수행할 때 이루어진다.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그분은 먼저 모든 소금 통을 부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 곧 교회에서부터 시작된다(벧전 4:17). 말씀을 많이 듣고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가장 종교적인 이들이 이 쓰레기 더미의 가장 큰 부분을 이루리라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사실이다.
소금이 제구실을 하려면, 자신을 보존하지 않고 내주어야 한다. 희생은 자기중심성과 반대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쾌적한 자리를 고집하지 않으셨다. 죄인인 우리가 멸망하지 않은 것은, 주님이 하늘의 소금 통에 남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죄로 물든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내주셨다. 세상은, 소금인 우리가 녹아서 섬길 가치가 충분히 있다. 주님이 세상을 위해 그분의 피를 쏟으셨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