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삶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1~2)
by. A. W. 토저ㅣA. W. 토저의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 ⑨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 11:6).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용서도 구원도 영적 생명도 없다.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이토록 중요한 ‘믿음’이 ‘행동’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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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일회적 행동이 아니다..
마음의 눈을 들어 구주를 응시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불 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라고 하셨다.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보는 것’과 ‘믿는 것’은 같은 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의 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인생의 경주를 하라고 가르친다(히 12:1~2). 믿음은 일회적 행동이 아니다. 구주를 향한 마음의 지속적 응시다. 예수님께 관심을 두길 평생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때, 예수님을 영원히 응시하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하는 한 번의 커다란 의지적 행위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받으시고, 우리의 주의가 1,000번이나 분산되어도 너그럽게 헤아려 주신다. 우리가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고자 하면 그 습관이 일종의 영적 반사 작용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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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정화하려고 애쓰지만 실패만 반복하던 사람이 자아를 만지작거리던 시도를 중단하고, 완전하신 분께로 시선을 돌리면 진정으로 안도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어떻게든 해내려고 오랫동안 시도하던 일이 그분 안에서 이뤄질 것이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소원을 품고 행하게 하실 것이다(빌 2:13).
믿음은 가장 덜 자기중심적인 덕목이다. 죄는 우리 내면의 시야를 왜곡하고 자기중심적이 되게 한다. 믿음은 그 대상에게 몰두하고 자신을 전혀 주목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 시선의 방향을 조정하는 일, 자신을 향하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다. 우리 내면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응시하면,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다정한 눈을 틀림없이 만날 것이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살피시기 때문이다(대하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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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믿음의 비밀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리 분주해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것을 아주 쉽게 만드셔서, 그것을 우리 중 가장 약한 사람도 닿을 수 있는 범위 안에 두신다. 믿는 것은 곧 마음으로 보는 것이기에, 특별한 장비 없이도 쉽게 실천할 수 있으며, ‘언제라도’ 가능하다. 이 중요한 행위를 하는 데 따로 더 나은 시기는 없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 중보의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한 매일이 좋은 날이고 모든 날이 구원의 날이다. 구주를 믿는 이 복된 일에는 ‘장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음을 들어 주님께 바치면 우리가 있는 곳이 공장이든 주방이든 그곳이 즉시 성소가 된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어디서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믿음의 비밀을 발견했다. 그들은 내면의 상태가 어떻든 개의치 않고 주님을 응시하는 습관을 계속해서 실천한다. 세상의 일들을 처리하느라 주님을 향한 의식적 관심을 거둘 수밖에 없을 때도 그들 내면에서는 은밀한 교제가 계속된다. 그들은 집중해야 하는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 바로 주님께로 날아가듯 되돌아간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개인 기도를 해야 한다. 성경 묵상은 우리 삶의 방향을 잡아 줄 것이다. 교회 공동체 모임은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고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이 커지게 할 것이다. 예배와 봉사 활동은 선한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여기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참다운 의미는 우리가 그 일을 하면서 ‘주님을 바라보느냐’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바랄 수 있는 모든 기쁨의 근원이시요, 완전함 그 자체시다.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삶의 ‘최고선’을 진정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