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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믿음은 나의 끝, 예수님의 시작
‘다윗의열쇠’ 대표 김선교 선교사 | 2025년 07월호
  • 아버지는 유명한 복음 전도자, 위로 네 명의 형 누나들도 충성된 선교사, 그리고 꼬마 시절부터 말씀과 전도로 조기 교육을 받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자동으로 무적의 완성형 크리스천이 될 것만 같다. 그런데 그는 탕자가 되었다가, 가룟 유다가 되었다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가 되기도 하며 갈팡질팡했다. 자신에게 수없이 실망한 채 믿음의 여정에서 중도하차하려 마음먹은 그때, 주님이 찾아오셨다. 자괴감과 죄책감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어루만지시며 고치고 싸매셔서, 다시 믿음과 복음을 들려 세상으로 보내셨다. 그는 바로 김선교 선교사. 진짜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 궁금하다면, 그의 간증을 들어 보자.

     

    취재│이시온 기자 · 사진│한치문 기자​ 

     

     

    탕자와 나

     

    저희 아버지가 유명한 선교사님이세요. 목이 터져라 ‘오직 복음, 오직 십자가’를 외치며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이끄는 영적 리더시죠. 예수님께 삶을 올인하신 아버지 밑에서 저희 5남매는 철저하게 묵상, 기도, 전도 훈련을 받으며 자랐어요. 부모님이 신앙 문제에 있어서는 엄격하셨지만 늘 사랑으로 대해 주셔서, 그 시절이 참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죠.

    문제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됐어요. 느닷없이 학교 선배에게 찍혀 꼬박 2년 동안 학교 폭력에 시달리게 됐거든요. 괴롭힘의 수위가 좀 셌어요. 학교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항상 피 묻은 교복 셔츠를 빨아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가족에겐 걱정 끼치기 싫어 알리지 않았는데, 집요한 괴롭힘과 이유 없는 폭행을 홀로 견디다 보니 사람이 점점 피폐해지더라고요.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고, 사춘기 반항심까지 겹쳐 저는 점점 더 어두워졌어요. 그러다가 2학년 말, 우연히 친구 따라 복싱을 시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운동하는 무리와 어울리니 더 이상 누구도 저를 건드리지 않더라고요. 그때 확신했죠. ‘아, 하나님이 날 지켜주는 게 아니네. 내가 힘을 길러야 하고, 강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야 하는구나.’ 그 뒤로 저는 완전히 엇나갔어요.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사고도 많이 쳤죠.

    어느 날, 아버지의 사역 단체가 멀리 이사를 가게 됐어요. 저희 가족도 단체와 함께 생활해서 같이 터전을 옮겨야 했는데, 정말 가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 말씀을 어기고 외박을 했다가 결국 아버지께 소환 당했죠. 아버지가 원칙대로 엄하게 저를 체벌하시는데,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회초리질에 종아리가 다 터지는데도요. 체벌 끝에 아버지가 저를 안아 주시며 말씀하셨어요. “육신의 아버지로서는 너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수십 번씩 든다. 하지만 너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 커서 나도 너를 포기할 수가 없구나.”

    그때 생각했어요. ‘도대체 아버지가 이렇게 간절하게 내게 물려주고 싶으신 게 뭘까? 부모라면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을 텐데, 이렇게 절실하게 내게 전해 주시려는 그 삶이 도대체 뭘까?’ 그리고 성경을 폈는데 누가복음 15장 말씀이었어요. 돌아온 탕자 이야기요. 본능적으로 느꼈죠.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하시는구나.’ 그리고 아버지가 말한 그 삶을 꼭 한번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 날로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이끄시는 단체에 들어가 선교사로 헌신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어요.

     

     

    유다와 나

     

    17살에 시작된 선교사의 삶은, 솔직히 재밌었어요. 이 단체는 함께 먹고 자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훈련 받는 곳이라, 대부분의 일상이 자급자족과 자발적인 노동으로 이뤄졌거든요. 그래서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청소, 밥, 빨래, 이런 게 저의 주 사역이었어요. 여러 예배, 집회, 훈련에 참석하기도 하고, 몸으로 직접 공동체를 섬기며 나름 즐거운 선교사 생활을 이어갔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 안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너무나 완벽한 신앙 모델이셨기에 ‘믿음’의 기준이 엄청 높아져 있었고, 같이 생활하는 분들의 삶도 치열하게 자기를 부인하며 예수님께 전부를 드리는 헌신이 기본값이라, 그 기준에서 제가 조금만 삐끗하면 자책과 절망이 폭풍처럼 덮쳐오더라고요. 주변에서 어린 저를 달래며 ‘젊을 땐 그럴 수 있지’라고 위로하셔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죠. 음란, 미움, 불평 같은 죄들을 떨쳐내려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고 허벅지가 피멍이 들도록 꼬집어 봐도 자꾸만 넘어지는 저 자신에게 실망감만 쌓여갔어요. 믿음과 삶의 간극을 줄이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저의 한계만 더 느끼게 되어서 결국 9년째 되던 해 ‘나는 선교사의 삶을,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없는 놈인가 보다’ 결론을 내리고 선교사의 삶을 내려놓기로 했죠.

    그때 아버지가 단체의 1년짜리 히브리어·헬라어 학교를 소개하시며 참여해 보라고 권하셨어요. 사실 저도 10년 가까이 헌신한 그 삶을 단호히 떠나기가 어려워, ‘그럼 스스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줘 보자’고 생각했죠. 히브리어니, 헬라어니 그런 건 모르겠고, 그저 딱 1년 동안 ‘순종이 뭔지 알고 싶다’라는 각오로 그 학교에 참여했어요.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오히려 저는 더 바닥을 쳤죠.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잠들고,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한국어로 말씀을 암송하지 못하면 식사를 못 하는 혹독한 교육을 따라가 보려 안간힘을 쓰고, 저를 괴롭히는 크고 작은 사건을 어떻게든 견뎌 보려 애를 썼지만,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그 학교도 도중에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는데, 그 순간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어요. 많은 것도 아니고 단 한 가지, 순종 하나를 배우겠다고 들어왔는데 그조차 실패했으니까요. 밀려오는 비참함과 함께 짐을 싸서 그 공간을 벗어나려는데,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순간 제 자신이 가룟 유다처럼 느껴졌어요. 예수님을 팔아먹었으면 차라리 세상으로 가서 잘 살든지,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안 되겠으면 예수님께 죄송하다고 다시 받아 달라고 싹싹 빌든지 하지,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스스로 목을 매잖아요. 그게 꼭 제 모습 같은 거예요. 얼마 후, 저도 가룟 유다와 같은 시도를 했고, 가족에게 발견이 되어서 살게 됐어요.​ 

     

     

    베드로와 나

     

    저는 0의 상태로 돌아갔어요. 하나님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데, 더 이상 뭘 해볼 힘도 없으니 교회 생활만 겨우 했어요. 긴 세월의 헌신도, 수고도, 다짐도, 그 무엇도 내세울 것 없이 그냥 하나님 앞에 엎어져 있을 뿐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요한복음 21장에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는 부분을 읽는데, 그 말씀에 제 마음이 머무르더라고요. 베드로도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갔어요. 잡혀가시는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고 좌절하며 울었고요. 그렇게 다시 어부가 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시죠. 그리고 세 번 물으세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제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셨어요. “선교야, 네가 나를 사랑하니?”

    베드로의 심정이 느껴졌어요. 사랑한다고 하자니 내 꼴이 너무 형편없고, 아니라고 하자니 그동안 주님을 위해 분투해 온 시간들이 너무나 선명하고. 그래서 베드로는 겨우 답해요. “주님이 아십니다.” 제 안에서도 그런 고백이 터져나왔어요. “주님, 저의 고통스러운 10년을 아시잖아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런 삶을 살 이유가 없잖아요. 인정도, 명예도, 재물도, 자랑도 아닌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길을 걸었던 걸, 주님이 아시잖아요.” 그 대답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저에게도 말씀하셨어요. “내 양을 치라.” 사명을 맡기시며, ‘양들을 위해 네가 갈 준비가 되었다’고 선포하신 거죠. 그 순간, 제가 평생 씨름하던 모든 신앙의 질문이 단번에 해결됐어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죠. “내가 온 이유는, 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야. 그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으렴.”

    그때 깨달은 진리가 지금까지 저를 이끌고 있어요. 내 노력으로 얻어 보려 했던 ‘온전한 믿음’은, 오히려 “저는 할 수 없다”며 두 손 두 발 다 든 채 예수님을 의지할 때만 얻을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까요. 그럼 예수님을 가장 잘 믿을 수 있는 곳이 어딜까요? 바로 광야예요. 허허벌판 광야에서는 두렵고 겁이 나니까 더 주님을 꽉 붙들 수밖에 없겠죠.

    그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다윗의열쇠’예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전하신 예수님의 말씀(계 3:7-13)을 씨앗 삼아, 작은 능력으로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한 사람을 키워내는 공동체죠. 구체적인 커리큘럼도, 기한도, 계획도 없는 ‘고생질(고민하고 생각하고 질문하자) 프로젝트’로 시작해, 오직 믿음으로 살고 싶은 제자 한 명 한 명이 살아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 모인 곳이에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 간증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지 몰라요. 그때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신다’라는 믿음을 곱씹게 되죠.

    마지막으로 sena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자신의 환경과 능력 때문에 스스로의 인생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크고 놀라우십니다. 나의 끝을 인정할 때, 예수님의 능력이 시작될 거예요.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주님께 다시 ‘사랑한다’ 고백하며, 오늘도 믿음의 한 걸음을 함께 걸어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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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박성민  2025-07-2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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