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영성

강준민· 기쁨의 영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쁨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충현님의 리뷰 · 2010-05-27 오후 4: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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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개역개정판을 기준으로 "기쁨"이라는 어구를 찾아보면 약150회의 단어가 본문 곳곳에 숨겨져 있다(기쁨의 반대인 "슬픔"은 63회가 검색된다). "기쁨"이라는 명사를 동사형인 "기뻐"로 바꾸면 무려 336회의 단어가 튀어나온다. 이 정도면 가히 기쁨은 명령에 가까운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나의 생각대로 그것이 명령이라면 무작정 따라야 하는 것일까?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하나를 어떻게 "해야만" 혹은 "가져야만" 하는 걸까? 그것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법칙에도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기쁨에 관한 것을 성경의 저자들은 그리도 즐겨다 사용한 것일까?
이렇게 조금은 철학적이고 때로는 관념적인, 돈이 되지 않는 생각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오래된 생각이었다. 성장배경이나 가정환경이 비교적 슬프거나 고통스럽지 않았음에도 나는 늘 이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아직도 이에 대한 상상은 진행중이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기뻐해야 할 일보다 그렇지 않은 때가 훨씬 많다. 내가 선택한 길이긴 하지만 나는 하루에도 한 번 이상씩 내가 스스로 짊어진 일에 기뻐하기 보다는 힘겹게 느껴지는 빈도가 더욱 많고 하나님께 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수차례 해보았지만 어떤 명확한 해답이나 갈증을 해갈해주는 생수와 같은 체험을 시원스럽게 한 것도 아니다. "성경 읽어봐 성경,, 왜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기록되어 있는데 그런 고민을 하는가?" 라고 말하면 일단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을 요량이다. 적어도 그렇게 단편적으로 말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그 말이 맞다손 치더라도 무언가 내용이 없이 또는 동기가 소소하게 끝나버려 다시 말라버리는 대지와 같이 돌아가버릴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나의 상태에서 [세상을 이기고 상황을 뛰어넘는 기쁨의 영성]이라는 강준민 목사님의 책은 일정부분 기쁨에 대해 가져야 할 나의 기존의 가치관을 조금 흔들만한 내용들이 쓰여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의 목차부분을 매우 소중히 생각하고 본문만큼이나 까다롭게 따지는 나의 독서습관상 이 책의 목차는 그리 끌리게 하는 동기나 역치같은 것은 없었다. 그만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목차였다. 오히려 "기쁨의 영성에 대해서 어찌 그리 쓰고 싶은 것이 많으셨을까?" 하는 마음을 다소 묵직한 책두께를 가지고 마음 속으로 그려볼 뿐이었다.
또한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진 못하였다. 보다 솔직히 말하면 시작해서 끝을 볼 때까지 볼 수 있는 여력이나 필요성이 조금 부족했다고 해야 할까? 때문에 목차를 먼저 여러 차례 읽어보고 관심이 있는 소제(小題)를 선택해서 읽었는데 오히려 그렇게 읽은 발췌독을 통해서 기쁨에 대한 저자의 태도와 설파를 좀 빨리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던 것 같다.
  
서론이 너무 길어 본론보다 길게 써버리게 될 것 같은데 발췌독의 부분을 조금 언급해보자면 먼저 제1부 (언제나 기쁨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에서 등장하는 내용 가운데 "어려운 환경을 선용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부분과 "가능한 괴로움을 적게 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지혜입니다." 라는 목차를 보고 바로 본문의 장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바울은 로마 병사들과 하루 24시간을 함께 있었습니다. 병사들의 교대 시간은 여섯  시간마다 이루어졌는데, 최소한 네 시간 이상을 바울과 함께 있는 병사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복음 전파는 가이사 황제 집안 식구들에게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빌 4:22)" 
바울의 복음 사역으로 네로의 부인과 가족들까지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그가 당한 모든 일을 복음 전파의 기회로 보았습니다. 로마에 끌려간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고 감옥에 갇힌 것도 하나님의 기회였습니다. 가이사 황제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선용할 것인지를 생각하십시오.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옥중에 있으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옥중에 있으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가 옥중서신입니다. 그가 쓴 글 가운데 보석처럼 빛나는 글이 옥중서신입니다. (본문 83~84쪽 중에서)
 
나는 군복무 시절 감옥에 들어가본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옥안에서의 상황이나 영화의 장면, 그리고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누구보다도 큰 공감을 할 수 있다. 바울의 경우에도 옥중서신을 쓰면서 받는 어려움과 고통들 그리고 상황 가운데 그가 얼마나 힘든 마음을 겪으면서도 기뻐함으로 빌립보 교회를 위해, 에베소 교회를 위해 편지를 써 내려갔는지 조금이나마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나의 특별한 체험 때문이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쁨을 선택하고 그 기쁨을 많은 이들에게 전할 줄 알았던 바울의 용기와 삶, 그는 아마도 예수님을 닮아 때와 장소를 초월해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을 것이고 상황과 환경에 구애받는 것보다는 그것을 뛰어넘으면서 스스로를 기뻐하는 상태로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지 않았을까? 옥중에서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분을 초월해서 전하려고 했던 에너자이저와 같은 열정을 지녔던 바울의 마음 한 가운데에서는 이렇게 기쁨을 진정으로 만들어내고 기뻐함으로 삶의 페이지를 몸소 실천하고 이루려고 애쓰며 살았던 그의 치열한 과정들이 녹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러한 바울의 삶의 자세와 기쁨의 발견과정들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환경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환경에 적응할 줄 안다. 더 나아가 환경을 선용하고 창조하는 데까지 이른다. 아주 탁월한 사람은 환경을 다스리고 창조해 낸다. 어려운 환경을 아름답게 바꾼다.
 
그렇다. 평범한 삶, 평범한 인생에 자족하면서  그날 그날의 미션에 대해 충실히 성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런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결코 평범하게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했던 내 안에 있는 본질적인 꿈과 본능이 꿈틀거려 그렇게 살면서도 견딜 수가 없어 수차례 고민하고 밤잠을 지새운 끝에 나는 평범하게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새로운 명제를 붙잡고 현재 스스로에게 어렵고 어찌보면 엄청난 실험을 해나가고 있다. 남들 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즐겁게 사는데 왜 나는 그런 삶을 따라가지 않고 있는가? 어쩌면 역린과도 같은 역행을 선택했는가? 
 
이렇게 방법론에 대한 고민과 실천, 그리고 그를 통해서 일구어 낼 수 있었던 소중한 꿈과 실천력을 기르고 닦으며 이루어가는 데 집중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책의 제목과 같이 영성을 내 마음의 자리에 마련하고 키워나가는 데는 비교적 소홀하였던 것이다. 그저 "이렇게 또는 어떻게 해나가면 되는 것이지!" 에 대한 강한 신념과 실천방법에 주력했지 근본적으로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의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이다. 책을 읽어내려갈 수록 그런 마음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고 결국은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덮어버리기에 이르렀다. 
 
책의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것이었는데 나는 책을 읽지 못했다. 그 때 접어두었던 페이지가 199쪽 장애물을 극복하는 기쁨이라는 부분에서일 것이다. 책 내용에 크게 감동을 하거나 뒤집어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했던 것이 아니라 어찌보면 그저 평범하고 무난한 내용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내 스스로 쌓으며 나가던 생각의 비이커가 가득 차서 흘러 내렸고 순간적으로 어질어질한 상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대충 다 알고 실천도 해보았던 것인데 왜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이러한 기묘한 영적 경험을 하게 된 것인지,, 그것이 어쩌면 나의 위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모자람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어떤 연유에서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인지,, 아직 나는 그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마지막 페이지를 딱~ 넘길 때까지 집중해서 읽는 독자는 아니다. 지금은 시험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책보다도 두껍고 어려운 책을 분해해가고 독파하는 데 정신이 없기 때문에 일반도서나 교양도서 그리고 이러한 신앙서적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자유롭게 읽고 생각하고 때론 웃고 때론 고개를 숙이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힘들다.  오히려 공부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독서"를 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처음 1년은 비교적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모든 것을 다잡아 가면서 책을 읽듯이 공부를 해가기 시작했지만 뜻밖의 결과와 열매 없는 결과를 받아 들고난 이후에는 더 이상 공부를 독서하는 것과 동일시할 수 있는 자세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레 책을 읽는 것도 예전과 비교하면 권수도 많이 줄었고 그저 빨리 내용을 훌어볼 요량으로 읽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해 어느덧 발췌독도 아닌 뽑아 읽기가 나의 독서습관이 되어 버린 형국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책을 한 권 집어들면 이 책도 보고 저 책도 보며 최소한 3권 정도를 같이 들고 읽어나가는 다독형 독서습관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나인데 이 [기쁨의 영성]과 함께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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